2008.05.27 10:38

피폭자 2세 고 김형률씨 3주기 추도식을 다녀와서

5월 24일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3년 전 세상을 뜬
원폭 피해자 2세 환우회장 고 김형률씨 3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피폭자였던 어머니를 둔
김형률씨는 태어날 때부터 방사선 유전성 질환인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을 앓으면서
자신의 질환이 원자폭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평생을 뛴 사람입니다. 그 결과
 부산의 한 대학 전문 의료연구진으로부터 방사선 유전 질환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논문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김씨는 피폭자 2세와 3세 중에 자기처럼 남모를 희귀질환에 시달리는
환우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생전에 70여명에 이르는 피폭2세 환우를 규합해
환우회를 결성했습니다. 이어 2002년부터는 국회와 시민단체, 국가인권회 등을
문턱이 닳도록 방문하며 피폭2세 환우들의 건강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원폭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에 불을 지핀 이 입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던 김형률씨는 그러나
2005년 5월19일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그렇게 소원하던 특별입법 제정을 보지 못한 채
끝내 운명하고 맙니다. 그가 기폭제가 되어 시민인권단체들
지원으로 마련한 특별법은 17대 국회 회기 내에
통과하지 못한 채 다음 국회를 기약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김형률씨 사망 후 그의 유지는 칠순 고령의 아버지인
김봉대씨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숭고한 유지를
아들이 잇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김형률씨 부자의 경우
거꾸로 아들의 유지를 아버지가 이어받아
특별입법 제정 운동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에
한없는 가슴이 뭉클함을 느낍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중의 고통을 안고
몸부림치며 세상의 편견을 피해 숨어 살던
피폭자 2,3세 희귀질환 환우들을 발굴해
원자폭탄의 가공할 후유증을 고발하고, 방치된
이들의 인권과 건강권 보호를 주장하는 특집기획기사를
써온 바 있습니다. 그 와중에 2002년 경 자신이
원폭2세 환우라고 세상에 커밍아웃한 김형률씨를 처음
만나 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서울 대구 부산 합천
등지를 10여차례 만나 '동행'하면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기록하고, 제가 과거 취재원으로 확보해둔 수십명의 피폭2세 환우
명단을 그에게 넘겨 환우회를 결성하도록  지원해왔습니다.
. 그의 삶과 죽음의 기록은 2006년 초 제가 펴낸
<대한민국의 함정>에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3주기 추도식은 단순한 추모행사를 벌이는
의례적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평화박물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그동안 김형률씨의 유지를 이어 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을
주도해온 평화인권 시민단체들이 김형률추모사업회(회장 한홍구 교수)를
결성해 18대 국회에서 기필코 뜻을 이루기 위해 충전을 갖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2주기 추도식은 시사저널 파업 및 단식 등으로
정신없는 상황이라 참석지 못해 늘 마음 무거웠는데
이번에 참석해보니 고무적인 변화도 많더군요.
우선 그동안 김형률씨의 피폭2,3세 건강권 쟁취 운동이
적잖은 피폭 1세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원폭피해자 협회에서는 이번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석해서 고 김형률씨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협회 김용길 회장은 "핵의 피해자로서 김형률씨의 생전 뜻을 받들어
앞으로 반전 형화 운동을 벌이겠다. 그 일환으로 전국 원폭피해자
지부지회 단위로 반전반핵 평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부터 시작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히더군요.

일본의 피폭자 2세들을 움직인 것도 김형률씨의 힘입니다.
피폭자가 훨씬 많은 일본에서는 그동안
피폭 2,3세 운동이 '아픈 자에게 건강권을 달라'는
차원에서 전개됐고, 그 결과 일본의 피폭 2,3세는
일본 전역에 걸친 원폭피해자 치료센터에서
무료진료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유전성을 공론화할 경우 그들이 입을
피해를 의식해 뒤로는 쉬쉬하고 있던 입장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나가사키 피폭자2세 청년회장
노다 지로씨(62)는 "한일 양국에서 김형률씨를 중심으로
피폭자 2,3세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지금 핵무장을 추진하기 위해 피폭자의 존재와 2,3세에 걸친 후유증을
무시 말살하고 있다고 보면서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김형률씨를 본받아 일본 내에서 열심히 뛸 각오가 돼 있다"라고
밝히더군요.

고 김형률씨는 이렇게 죽은 후에야
인류공동체의 건강한 미래를 개척하는
한줄기 빛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 길에 산자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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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3
  1. ray ban sunglasses 2012.06.20 18: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피폭자의 존재와 2,3세에

  2. u boat replica 2012.10.22 10: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식을-다녀와서

  3. Panerai replica 2012.10.26 15: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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