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3 14:30

잠들지 않는 김훈 중위

판문점 경비소대장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추적기

청년 장교 유해 8년간 군부대 창고 방치…정의 병든 사회


 ⓒ 시사IN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는 1군단 헌병대의 한 부대 막사 창고에는 10년째 빛바랜 태극기에 감긴 한 장교의 유골함이 방치돼 있다.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망각된 그의 이름은 ‘고 김훈 중위’이다. 8년 전 군대 의문사 문제를 국가적 인권 아젠다로 부각시키고 구멍뚫린 판문점 군기문란 체제에 경종을 울려 개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던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교롭게도 김훈 중위의 유해가 8년간 싸늘하게 방치된 부대 창고는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중장이 현역시절 1군단장으로 재직하며 관할했던 곳이다. 김척 장군과 함께 해마다 한차례씩 김중위의 유골이 방치된 영현 창고를 방문하는 나는 이곳이야말로 대한민국 군대 의문사 사건이 처한 현주소이자 국토방위에 무한 충성을 다바친 군인가족에게 국가가 본분을 저버린 상징적 장소라고 여기고 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경비중대 소대장이던 김훈 중위는 근무중이던 전방 241GP에서 싸늘한 권총 사망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현장에 수사관도 도착하기 전에 이 사건은 언론에 자살로 전파된 채 묻힐 것을 강요당했다. 이튿날이 16대 대통령 취임식인데다 사고 부대의 지휘 책임자가 새로 들어설 DJ정부의 신임 육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김동신)이었다는 점에 이 사건이 서둘러 억지 자살로 처리되는 비극은 잉태돼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김척 장군과 함께 9개월 동안 군부대가 감추고자 하는 김 훈 중위 타살의 배경과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타살 정황 증거들, 증인들을 찾아내 10여 차례에 걸쳐 시사저널에 연쇄 추적보도를 내보내며 군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 증거는 수백가지가 넘었다. 핵심만 요약하자면 왼손잡이인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는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고 오른손에서 검출된 점(방어흔적), 사망 현장의 크레모아스위치 박스가 부서져 나가있었고 김중위 손목시계 유리가 깨져있었던 점(외부자 침입 및 격투흔적), 김중위 사체의 두정부에 혈종이 있었던 점(외부자 가격 흔적)등이었다.  

그러나 부실한 초동 수사를 거쳐 억지로 자살로 꿰맞춘 당시의 군헌병대와 형식적 재수사를 담당한 육군고등검찰부는 이런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한번 하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그해 12월 시사저널은 그동안 온갖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김척 장군과 공조해 조사한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했다. 당시 시사저널 보도는 판문점 김중위 사망 부대에 일부 소대원들이 북한 적공조와 내통해 야음을 틈타 북한을 오간 충격적 군기 문란이 자리했고, 신임 소대장인 김중위가 이를 척결하기 위해 고심하는 과정에서 부대대 몇몇 용의자에 의해 권총을 머리에 맞고 자살로 위장 처리되었다는 정황과 증인 및 증거들을 공개하며 원점에서 재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 보도 내용은 며칠 후 고스란히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비공개 조사를 거쳐 똑같은 내용으로 언론에 공표되었다.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둘러싸고 충격적 내용들이 시사저널에 보도되자 국내의 모든 언론은 1주일 이상 판문점 군기문란과 김훈 중위 타살 의혹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결국 정부는 당시 판문점 군기문란 실상을 자인하고 경비 체제를 개편을 약속했다. 또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비롯해 80년대 이후 군대에서 한해에 4백여건씩 발생한 의문사에 대해 전면 재조사하겠다고 국민에 약속했다. 나는 이 사건 추적보도로 당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상과 삼성언론재단이 수여하는 보도부문 대상을 받는 과분한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결성된 국방부 특조단이 6개월 동안 사건을 붙들고 있다가 내린 조사 결론도 그밥에 그나물이었다. 판문점 군기문란만 시인한 뒤 김훈 중위 사건 결론은 그대로 고수한 것이다.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이 뒤집히면 당시 국방 수뇌부는 부실 수사는 물론 사건 은폐 책임마저 져야 할 상황이었다. 또 군 법무조직이 죽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군부 내 위기의식이 컸다. 이런 군부가 ‘자살’결론을  고수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과정에 맞서 나는 당시 양인목 특조단장과 수차례에 걸쳐 독대하면서 진실을 은폐하면 군의 명예를 다시 수렁으로 몰아넣는 짓이라고 경고하고 그의 ‘자살 몰이 작전’을 폭로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민통선 내 군부대라는 성역에서 일어난 장교 살해 의혹 사건의 진상을 민간인인 기자가 추적해나가는 데 따른 고통과 위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진행된 과학적 총기 발사 실험에서 명백히 타살로 처리해야 할 결론과 현장의 타살 입증 증거들, 부대 내부자들의 양심적 타살 증언도 군부의 ‘조직적 자살몰이 작전’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국방부 특조단이 내린 자살 결론을 국회 국방위는 부실 조사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또 이후 김척 장군이 국가를 상대로 낸 이 사건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사법부도 ‘진상을 규명할 의지조차 없이 진행된 초동 수사로 인해 현장의 타살 정황 증거들을 배척한 상태에서 자살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사건에 대해 자살이나 타살 어느 쪽으로도 결론 지을 수 없는 상태다’라는 요지로 판결했다.

결국 입법부와 사법부는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한 국방부의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김훈 중위 사건 진상 규명은 그래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히 지난 6월 여야 합의로 군대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관련 진상규명 특위(위원장 이해동목사)가 구성되어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은 최근 이곳에서 재조사를 착수한 상태다.

나란히 육사 선후배이기도 한 김척 장군과 김훈 중위 부자가 국방에 헌신한 기간을 합치면 36년이 넘는다. 그러나 군과 정부는 두 군인 부자의 명예를 철저히 짓밟은 것은 물론 유가족에게 8년간 ‘단잠’과 ‘단밥’마저 빼앗았다. 흔히들 세월이 흐르면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김척 장군 부부에게 그 말은 당치 않다.

올봄 명동성당에서 열린 김훈 중위 7주기 추도식에서 김척 장군은 위로차 참석한 수많은 군대 의문사 가족들을 상대로 이렇게 연설했다. “내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그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밝혀서 다른 수많은 아들들의 군대 내 억울한 죽음을 막고, 내 아들의 명예 뿐아니라 다른 모든 군대 내 사망자들의 명예도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늘까지 힘을 내고 있습니다”. 명예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국방을 위해 헌신하다 억울하게 죽은 청년 장교 김훈 중위의 유해가 8년간 군부대 창고에 방치된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분명 ‘정의’가 병든 사회다. 망각에서 깨어나 그의 유해를 하루속히 국립묘지로 인도하는 일은 이제 온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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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6
  1. bongsanaxl 2010.06.06 00: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1군단 전역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김척장군.. 제가 상병휴가때 인사안하고 지나가서 저희 부대 중대장 한딱가리 당했던 그런곳입니다. 뭐 지난일이라 잘잘못 따질건 없고 다만 잘됐으면 좋겠는데 제가 잘 몰라서 전혀 도움을 못 드리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쓰리스타가 해결못하는데 병장이 무슨..........

  2. 윤소정 2010.06.06 01: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인사하는건 당연한 예절 아니였던가요? 낮은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것은 당연한 거라 배웠습니다. 저는 여자이지만 군대에서는 더 엄격하다고 알고있구요. 예절이잖아요. 너무나 당연한걸 가지고 이렇게 안좋은 일이 일어난 곳에서 마치 고자질 하듯이 언급한다는게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제3자 입장에서 좀 그러네요. 너무나 애통한 이 글에서...

  3. 신현훈 2010.06.06 19: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고자질이라기 보다... 애통함을 개인적 경험의 안경으로 바라본 치기어린 시선이 아닌가 합니다.
    예절은 사회에 통하는 통념이고... ...강제되는 윤리의식라 생각치 않습니다. 예를 표하는 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니까요... ...의식적으로 강요하실것 까지는....
    어쨌건 군대엔 군법에 따라 예를 표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걸 간과해서 받은 본인의 처사를 한그릇 막걸리와 함께 친구들과 풀어야 할 회포를 번지수를 잘못찾고 쓴거 같습니다.

    참 어려운 단어가 '진실' '진리'라는 말인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 아니,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 ..과연 '진실'이라는 것이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수 있는 자리가 과연 있는가 의심스럽습니다.
    참... ... 3성장군이 아니라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 ..그 마음 헤아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4. replica watches 2012.07.27 16: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감을 물었더니, 윤형

  5. Rolex replica 2012.08.30 19: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습니다...

  6. Cheap Ugg boots 2012.12.19 12:5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의식적으로 강요하실것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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