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3 15:00

GQ 가 선정한 한국의 탐사 보도 기자 7인 이야기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40)
경력 14년 YS와 DJ 정부 시절 안기부가 국가 주요 인사들을 조직적으로 도감청해온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탐사 보도란 사회적으로 은폐된 비리나 구조적인 모순을 심층 취재해서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인터넷 뉴스가 넘치는 시대에 깊이 있는 탐사 보도야말로 기자의 마지막 승부처일 수밖에 없다. 내가 지닌 관심사는 권력의 부정과 비리, 권력 남용이다. 아무리 권력 구조가 맑고 깨끗해진 듯해도 음지는 늘 있다. 그걸 감시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정말 심층적인 탐사 보도를 하려면 특정 영역에서 꾸준히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권력에 관한 취재의 경우 정보를 지닌 취재원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탐사 보도는 평소에 해야 한다.

얼마전 보도한 ‘안기부 도청 파문’ 기사 역시 한 달 정도 취재한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수년째 관심을 갖고 탐사했던 부분이다. 국정원과 정부의 취재원 여럿을 만나면서 도청 사실 여부에 대해 반복해서 질문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냈다.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도청록의 내용에 집중했다면 난 도청이라는 행위 자체에 주목했던 셈이다. 난 늘 틈새를 노린다. 평소에는 권력 집단 사이 사이를 다니면서 조용히 관찰한다. 그러다 권력 내부에 갈등이 생기면 그때 평소 의문을 품고 있는 부분에 대해 취재를 하기 시작한다. 갈등은 틈을 만들고 권력자들은 기자에게 각자 유리한 각도에서 말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권 말기에 큰 비리 기사가 많이 터지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은 숨기면서 말을 하지만 여러 취재원을 반복해서 만나면 결국 무엇이 과정된 것이고 무엇이 의도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 사실 권력자들은 기자가 기사를 못 쓸 거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들이 지닌 정보는 대부분 민감하지만 단편적이다. 그래서 기자 역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단편적인 정보를 조립해내는 게 발로 뛰는 기자의 힘이다. ‘그 기사 나가면 엄청난 오보다’라는 식의 압력이 들어올 때 자신의 기사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도 기자의 발이고 말이다.

권력을 겨눈 탐사 보도 취재는 늘 때가 있다. 언저리를 맴돌다 때가 되면 평소 파악한 흐름을 바탕으로 사실을 조합해 진실을 찾아낸다. 권력에 관한 탐사 보도는 일단 한 번 터지면 당분간은 다시 취재하기가 어렵다. 조용히 또 때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어쪄먼 삼성과 권력과의 관계를 취재할 틈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안기부 도청 파문을 거치면서 삼성과 권력의 유착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관한 탐사 보도는 매우 정치해야 한다. 특정한 누군가를 겨누게 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바로 반격이 들어온다. 하지만 100% 확인된 기사란 건 없다. 그래서 권력에 관한 큰 기사를 쓴 뒤엔 잠을 못 잔다. 나 같은 기자에 대한 미행이나 도청은 암묵적으로 늘 겪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그 사람들’을 만나면 ‘덕분에 요즘 참 바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공중전화를 사용하거나 미행에 신경쓰기도 한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나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기사가 많아질수록 아주 조금씩은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그게 내가 ‘이 짓’을 하는 이유다.”

KBS <추적60분> 구수환PD(47)
경력 19년 담당PD와 함께 퇴직한 뒤 재벌기업에 입사한 정관계 인사들의 리스트를 보도해 거대 재벌의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를 추적했다.


“안기부 도청록을 통해 거대 재벌의 정관계 로비문제가 불거지기 두 달쯤 전부터 이 문제를 후배PD와 취재하기 시작했다. 오랜 동안 <추적60분>을 해왔던 터라 이젠 가끔씩은 그렇게 맥이 잡힌다. <추적60분>은 말하자면 하나의 탐사 보도팀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PD들이 나름의 취재를 하고 선임 프로듀서인 내가 데스크로서 취재 방향을 결정한다. 난 현장 체질이지만 지금은 데스크로서도 할 일이 많다. 특히 방송은 보도 시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데스크의 진두지휘가 꼭 필요하다. 이번 같은 경우도 그렇게 후배PD와 내가 낚아챈 기획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안기부 도청록이 터졌고 그 직후 퇴직한 뒤 재벌 기업에 입사한 정관계 인사들의 목록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획은 앞으로 <추적60분>이 방송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종이 저널에 비해 방송 저널은 탐사 보도에서 취약한 측면이 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만 해도 <추적60분>은 간판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하지만 그건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음지가 많았고 거기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풍파가 일었기 때문이었다. 구조적인 접근보단 사회부적인 고발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것만도 대단한 것이긴 했다. 방송 기자들이 각자 취재처에 묶여 있을 때 그런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운 프로듀서들이 나선 것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탐사 프로그램도 더 많은 걸 요구받고 있다. <추적60분>은 대기업에 입사한 정관계 인사의 인맥 리스트 를 취재하거나 갑작스럽게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관한 취재처럼 좀 더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려고 한다. <추적60분>이라는 이름값 때문이라도 이런 탐사 보도를 놓을 수가 없다.

방송은 결정적인 취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황 증거만으로 논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그림이나 분명한 인터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취재원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가거나 문 앞에서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엔 몰래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다니기도 했지만 요즘은 초상권 소송에 휘말리기 일쑤다. 하지만 방송은 종이 저널에 비해 그 파급력이 훨씬 크다. 난 탐사 보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집요하게 진실을 좇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해 있다. 요즘은 특히 분발해야겠다고 느낀다. 언론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 언론은 뒷북만 친다. 언론이 앞서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시사IN 정희상 기자(43)
경력 17년 그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암살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


“<시사저널>의 전 편집장은 날‘원혼이 씌운 기자’라고 부르곤 했다. 나도 가끔 이 모든 문제들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다. 내가 취재했던 내용들은 결국 내 숙명이 되고 내 영원한 탐사 보도의 대상이 된다. 난 정의로운 분노와 오기로 취재를 한다. 취재 기법 같은 건 잘 모른다.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서 시작된 군대내 의문사 문제나 매국노들의 조상 땅 찾기 보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보도 같은 것들은 그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분노 때문에 매달렸던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자꾸만 감추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오기가 생겼고 끈질기게 매달리게 된 것들이다. 탐사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기자 개인의 문제 의식이다. 사회적인 거악과 마주하면 분노가 느껴지고 기자는 그 분노를 좇아 취재해야 한다. 그러면 치열해지고 치밀해진다. 국방부나 국정원 사람들이 취재를 방해하면 그 때 느껴지는 오기가 자양분이 된다. 어떤 때는 오랜 동안 함께 했던 취재원이 나를 이끌기도 한다.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취재가 그랬다. 취재원이 자료를 모아줬다.

내겐 취재 원칙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운 뉴스는 없다. 보이는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새로운 뉴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둘째는 사람을 만나면서 늘 다른 취재 거리를 묻는다. 그렇게 고구마 줄기를 캐듯 줄줄이 취재를 하는 게 내 방식이다. 그리고 중요한 취재원을 만날 때는 거의 모든 자료를 철저하게 파헤친 뒤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만난다. 이완용의 손자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1990년대 초 다른 취재를 위해 한 독립투사의 후손을 만났더니 ‘매국을 하면 3대가 흥하고 애국을 하면 3대가 망한다더니 이완용의 자손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얘길 듣고 고구마 캐듯 하나씩 취재를 시작했다. 이완용의 손자를 만나기 전 차라리 나를 만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할 만큼 충분히 취재를 한 뒤 연락을 했다. 김형욱 암살 사건을 취재할 때도 그랬다. 그때 김형욱 암살을 취재하려 했던 게 아니라 공작의 세계, 암살의 세계를 취재하던 중이었다. 박정희 시대에 공작과 암살의 세계는 너무 복잡했다. 중앙정보부가 북한 정보부에 이중 간첩을 심어놓고 그 이중 간첩이 남파된 뒤 국내 인사들을 간첩으로 만들고, 다시 중앙정보부가 그 국내 인사를 간첩으로 몰아 잡아들이는 식이었다. 그렇게 서로 속고 속이다 결국 엉겹결에 간첩이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공작과 암살의 세계를 밝혀낸다면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같은 현대사의 억울한 누명들을 벗겨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다들 입을 안 열다 ‘다른 건 몰라도 김형욱 암살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인사를 만났다. 그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내가 했다’면서 암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든 탐사 보도는 사실만이 아니라 진실을 좇는다. 그런데 진실일 가능성이 아무리 높아도 결과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기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단정짓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협박을 당하거나 하면 안 괴롭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가끔 ‘네 아들이 학교 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식의 전화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땐 섬뜩하다. 난 늘 미완의 보도를 하고 있다. 군대 의문사도, 김형욱 사건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보도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의무는 벌써 몇 년째 보도를 하면서 그 끈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말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그것이 탐사 보도의 핵심이다. 하지만 기자는 열어젖힌 마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절대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도 내가 파헤친 문제들에서 벗어날수 없어서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자로서 내 숙명이다.”

중앙일보 이규연 기자(44)
경력 18년 난곡빈민촌을 취재해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파헤쳤다.


“한국 언론의 천박함은 늘 기사를 쓰면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누군가를 악으로 몰아붙이면서 스스로 중립성을 잃고 헤맨다는 데 있다. 탐사 보도란 흔히 은밀한 취재원인 ‘딥스로트’를 주차장 뒤에서 만나서 비밀 정보를 주고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사회의 적을 무찌르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보도는 자칫 폭로 저널리즘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흔히 미국에서 탐사 보도가 활성화된 건 워터게이트 사건 전후라고 본다. 하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탐사 보도 저널리즘은 존재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본가들의 부정부패가 심화되면서 그것을 고발하는 기자들이 등장했고 그게 탐사 보도의 효시가 됐다. 하지만 1,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전시체제 아래에서 국가가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탐사 보도 기능은 마비됐다. 그것이 1960년대 베트남전 전후로 부활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1980년대 들어서면서 탐사 보도와 폭로 저널리즘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무차별적인 폭로가 정치 권력이나 사회적인 모순을 감시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탐사 보도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치밀하게 연구하려는 취재 기법에 대한 연구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 됐다. 누군가를 악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엄정한 중립성을 갖고 심층적이고 참신한 방식으로 보도를 하는 게 탐사 보도다. 탐사 보도가 흔히 한국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들 한다. 그 이유는 무언가 대단한 걸 캐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취재원의 입에 의존하는 지금의 취재 방식을 개혁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난곡빈민촌 취재에서 내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빈민촌의 실상뿐만 아니라 빈민촌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적 모순이었다. 그걸 위해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여러 취재원을 만나 취재를 했다. 그래서 심층적인 탐사 보도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분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엔 특정한 출입처를 갖는 일상적인 기자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공허하더라. 무언가 입체적인 취재를 하고 싶은데 힘에 부쳤다. 사회적인 모순을 겉만 보고 지나가는 게 싫었다.

막말로 탐사 보도는 기자 개인에게 이익이 남는 일이 아니다. 출입처와의 유대 관계가 생기지 않으니까. 대신 유착될 일도 없다. 그게 좋더라. 늘 객관적일 수 있으니까. 내가 느끼는 사회적인 모순을 공정하게 분석할 수 있으니까. 천편일률적인 기사 작성 관행을 바꿔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취재 기법부터 기사 작성 기법까지 새롭게 연구해볼 수도 있다. 한국 신문 언론의 위기는 독자들이 기사를 읽지 않고 제목만 보면서 시작됐다. 그걸 돌파하는 길이 읽어볼만한 탐사 보도 기사를 쓰는 거다. 그것이 내가 탐사 보도에 힘을 쏟는 이유다.”

뉴스위크 임도경 기자(46)
경력 25년 국민의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라는 최규선 게이트를 보도해 당시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렸다.


“탐사 보도의 매력은 내 시각으로 세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느낄 때 탐사 보도는 시작된다. 세상의 진실은 그냥 보이지 않는다. 단편적인 뉴스 전쟁은 오히려 진실을 감춘다. 원래 취재는 전쟁이다. 기자는 검투사다. 특히 일간지에선 더 그렇다. 하지만 매체들 사이에서 보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선 진실을 가늠할 수 없다. 탐사 보도란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한 발 떨어져서 숲을 보는 것 말이다. 기자의 재산은 사람이다. 올해로 25년째 기자일을 하고 있는데 25년 전에 만난 취재원과 아직도 만난다. 25년 기자 생활 동안 대체로 정치부에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정보가 내게 모인다. 이런 식이다. 오래 전 취재였는데 5공 정권 때 허화평 씨의 친인척 중에 북한에 관련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시절 분위기론 허화평 씨는 절대로 군인도 못되고 보안사령부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취재해 특종을 했다. 아주 작은 정보에서 시작되는 게 탐사 보도다. 탐사 보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믿을 만한 취재원을 확보하고 그가 입을 열게 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집요하게 설득하는 것 뿐이다. 난 대체적으론 설득에 성공하는 편이다. 예전에 ‘오대양 사건’ 취재 때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사체에서 정액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사람의 맥을 짚는 게 탐사 보도의 핵심이다.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이 내게 중요한 취재원이 될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 딥스로트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최규선 게이트가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얽힌 국정원의 공작에 관한 기사를 쓸 때도 그랬다. 둘 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DJ가 날 참 이뻐했었다. DJ 정권 인사들도 잘 알고 지냈고. 다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터였다. 하지만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때론 단순해져야 하니까.

탐사 보도를 하는 기자는 늘 세상과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쓸 가치가 있다 싶으면 과감하게 써야 한다. 탐사 보도는 모든 기사의 꽃이다. 그러나 탐사 보도의 어려움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입체적인 정황을 보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반격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최규선 게이트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권력 핵심을 건드린 대가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난 떳떳하다. 취재 과정에서 떳떳하다면 탐사 보도의 결과도 늘 좋다. 그게 나의 믿음이다.”

SBS 이정애 기자(34)
경력 11년 말기암을 고친다는 한의사의 실체를 파헤쳐 임상 실험 없이도 시술이 가능한 당시 한의학 법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보도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 그럴 때 화가 난다. 지속적으로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니까. 또 방송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자꾸만 사회 문제에 치중하게 된다. 방송국 내에서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좌천 아닌 좌천’에 해당된다. 특정 출입처만 담당하는 게 보통이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젊은 기자들이 탐사 보도에 나서게 되고 결국 다양한 부서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탓에 취재력이 떨어진다. 탐사 보도의 깊이가 얕아지고 결국 현상에 치중하기 쉬운 사회부성 보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건 악순환이다. 탐사 보도는 모든 기자들의 꿈이다. 지금까지 탐사 보도를 하면서 보람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말기암을 고친다는 한의사’를 취재했을 때는 객관적으로 너무나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한의사가 말기암을 고친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가 치료했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이 사실 하나둘 죽어간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추적 보도했다. 또 그의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는 환자가 사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완쾌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증명해야 했다.

또 그 과정에서 임상 실험 없이도 시술을 할 수 있는 한의학 법제도의 문제점까지 주목해야 했다. 결국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사실 썩어버린 사회의 거짓 하나를 밝혀냈다. 하지만 여전히 탐사 보도에 대해선 갈증을 느낀다. 얼마 전 안기부 도청을 밝혀낸 <조선일보>의 이진동 기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진동 기자가 어떻게 취재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구조적인 모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방송 탐사 보도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좀 속상하다. 만일 내게 그런 상황이 주어졌다면 이진동 기자처럼 취재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난 탐사 보도에 열성이다. 보도를 한다고 다 변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방송 탐사 보도가 성공하면 세상이 크게 변한다는 건 경험해봐서 알고 있으니까.” 에디터/ 신기주

세계일보 김형구 기자(33)
경력 7년‘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기획 취재를 통해 주요 문서나 기록이 소홀한 한국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탐사 보도란 과학적인 보도를 뜻한다. 이런 거다. 얼마 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이 어떤 식으로 특정 지역에 더 큰 피해를 입혔는지를 보여주는 보도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는 태풍의 풍속이 더 빨랐는데도 상대적으로 덜 피해를 입은 고급 주택 지역과 풍속이 느렸지만 초토화된 빈민가를 비교해 이번 카트리나 피해가 미국의 고질적인 빈부 격차가 만들어낸 ‘인재’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모두가 카트리나 피해가 인재라는 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증명하진 못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과학적인 탐사 보도를 통해 그걸 증명해냈고 사회적인 모순을 새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탐사 보도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지난 몇 년 동안 각 언론사들이 탐사 보도팀을 꾸려서 취재를 지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시들하다.

<조선일보>도 얼마 전 탐사 보도팀을 해체했다. 그 이유는 탐사 보도팀을 만들면 매번 대단한 특종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사 보도는 특종을 좇는 게 아니다. 현상만을 좇기 마련인 언론 보도의 홍수 속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한 설득력 있고 책임감 있는 기사를 쓰는 게 탐사 보도의 첫 발이다. 한국 언론은 그저 ‘빨대’라고 불리는 취재원한테 한 마디 듣고 와서 확대 보도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 개 기획에 대해 오랜 시간 취재를 하면서 내실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사 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요즘 언론사들이 너무 급하게 탐사 보도에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흔히 탐사 보도는 ‘매번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접촉하던 취재원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취재원을 발굴하고 자료를 모으는 일은 매번 처음부터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래서 탐사 보도 기자들은 멀티플레이어가 된다. 수많은 자료를 엑셀 같은 프로그램으로 분석하고 사람을 만나고 기사를 쓰는 것까지 모든 걸 해내야 한다.

사회적 관계망 분석이라는 취재 방식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현상과 본질을 함께 드러내놓는 취재 형식이다. 그것 역시 탐사 보도의 한 기법으로 개발된 것이다. 탐사 보도란 그렇게 과학적으로 세상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과학적인 방식으로 ‘기록이 없는 나라’ 처럼 방대한 기록을 들춰내야 하는 조직적인 기사들도 나올 수 있었다. ‘국군포로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소외받고 있는 국군포로를 하나씩 찾아내 국가 차원의 보호가 없는 그들의 처지를 보도할 땐 국방부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탐사 보도의 관심 거리는 그렇게 발굴된다.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 말이다. 거기서부터 진실이 비롯된다.”

에디터/신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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