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3 14:32

이완용 땅찾기 취재후기

매국노 이완용 후손의 매국장물 되찾기 추적기

친일파 후손 매국장물 찾기는 국가의 책임 커


◇ 이등박문과 이완용 내각 사진 ⓒ 독립기념관

지난달 20일 국무총리 직속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 송병준 민영휘 등 을사오적, 정미칠적 12명의 후손들이 찾아간 75만 제곱미터의 토지에 대한 일제 조사에 들어가 국고로 환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친일민족반역자들의 후손이 선대가 일본 천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은사 토지를 상속시켜달라고 남몰래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려 ‘친일파 재산 찾기’를 공론화한 기자로서는 만감이 교차한 날이었다.

일제에 나라를 넘긴 주역으로 규정된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이 선대가 조성한 수천만평의 토지를 상속받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단서를 기자가 처음 잡은 때는 1992년 3.1절이었다. 당시 3.1독립선언 기념식을 앞두고 이른바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추적하던 중 권동진 선생의 손자인 권혁방씨(유족대표)로부터 들은 탄식이 실마리를 제공했다. 해방 무렵 서울 동성고교 동창 중에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씨가 있었는데 캐나다에 이민가 살던 이씨가 그 무렵 귀국해 일부 동성고 동기동창들과 함께 이완용 재산 찾기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는 것이었다. 이완용 땅 찾기가 ‘돈되는 일’이라고 여겨 달려든 동창들을 상대로 수소문하고, 국립도서관, 종로구청 호적담당, 서울민사지방법원, 우봉이씨 족보 등을 뒤져 나가는 방식으로 6개월간 탐사 추적한 결과 이완용 후손의 재산 찾기 전모가 파악됐다. 당시 이완용의 후손은 이름있는 변호사들과 전국 각지의 이완용 명의 토지대장이 보관된  지방자치단체 일부 간부들을 앞세워 정보를 얻고 소유권 반환 소송을 벌여 나가고 있었다.

1992년 경술국치일을 기해 이 같은 사실을 <시사저널>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자 독립운동 유관단체들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벌집 쑤신 분위기가 됐다. 이완용 후손 재산상속을 돕던 한 변호사는 사임계를 냈고, 분노한 민심에 신변위협을 느낀 후손은 그 뒤 캐나다로 도피했다. 그러나 이미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 30억원대(당시 시가)땅은 처분해 돈을 챙긴 뒤였다. 이 보도로 여론이 들끓자 14대, 15대 국회에서 과반수에 이르는 여야 의원들이 민족정기를 확립하겠다며 잇따라 ‘친일 매국노 재산환수 특별법’제정을 서둘렀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민법상 보장된 국민 재산권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의회 내 다수의 보수적인 논리에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따지고 보면 해방 후 친일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가운데 의회에 진출해 기득권을 구축한 일부 친일파 후예들이 주도하는 형식 논리에 불과했다. 법원도 헌법이 규정한 국민 재산권 보호 조항을 근거로 특별입법이 없는 한 비록 매국노의 매국 장물일지라도 현행 민법상 후손의 상속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 국민의 염원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헌법 해석을 둘러싸고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후 독립국가 건설 과정에서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고 그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것은 매국노 당사자와 그 후손을 제외하고는 헌법 제정자인 모든 국민의 합의된 뜻이자 이념이었다. 또 제헌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재산권보호 조항의 정신이 과연 보호받아야 할 재산권 범위에 악질 매국 장물까지 넣으라는 정신은 아니라는 헌법학자들의 주장도 나왔다.

이완용 후손의 땅찾기 소송을 첫 보도하고서도 국가사회적으로 이렇다할 문제 해결책 마련이 늦어지는 것을 지켜본 기자는 이후 명백히 규정된 악질적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추적해 그들 후손의 땅찾기 과정을 파헤쳐 들어갔다. 일진회 총재로서 역시 한일 병탄에 가담한 매국노 송병준 역시 일본 왕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전국에 걸쳐 수천만평의 토지를 조성했는데 그의 후손들도 그 땅에 대한 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1996년 이 내막을 추적해 크게 보도하자 위협을 느낀 송병준의 후손들은 기자와 제정구 의원(작고)을 찾아와 선대의 매국 장물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합의서를 썼다. 그러나 후손들 내부의 이견과 다른 친일파 토지에 대해 법원이 후손들에게 승소판결을 내려주는 것을 지켜본 이들은 변심했다. 송의 후손들은 사회단체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땅찾기 소송을 계속 벌여나갔는데,실상은 기증동의서를 써주고 승소할 경우 지분을 나눠 갖기로 이면계약을 맺는 사기극이었다. 기자는 지속적으로 이런 내용을 폭로하며 국회에서 친일파의 매국 장물을 국가가 환수하도록 하는 특별입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해나갔다.

해방 후 수십년이 지나도록 친일민족반역자의 매국 대가 상속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민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매국형 친일파 후손들의 일제가 하사한 조상 땅 찾기 소송 대열에 대거 나서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도 자괴감이 널리 퍼져 나갔다.

친일파 후손들의 매국 장물 찾기는 따지고 보면 국가의 책임이 크다. 광복 후 친일매국노의 재산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민족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승만 정부는 겉으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선언하고서도 임정이 내건 중요한 토지 국유화 정책을 계승하지 않았다. 농지개혁 과정에서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좌우 세력 전체가 한목소리로 주창했던 ‘해방되면 매국적의 일체 재산을 몰수한다’는 정책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 후 역대 정권에서도 단 한사람의 민족 반역자도 제대로 단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재산까지 고스란히 지켜줬던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현실을 개선하는 길은 국회의 특별입법밖에 없었다.

1980년대 말 이완용 후손으로부터 시작된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 소송은 총 31건으로 그 중 원고 승소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판여론이 거세자 그동안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주던 사법부조차 2004년 이후에는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재판 진행을 유보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17대 국회에 이르러서야 이 사건을 둘러싼 해묵은 숙제는 해결될 실마리를 잡았다. 지난해 송병준 후손의 땅 찾기 소송 대상인 부평 미군기지 부지가 위치한 지역구 최용규 의원이 여야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다시 특별법을 발의했고,  법안이 지난 5월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 특별법에 따라 지난 8월18일  ‘친일파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 변호사)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이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한 기자는 광복 60년이 지나도록 국민에게 민족적 수치와 스트레스를 안겨준 친일파 땅찾기라는 단어가 이번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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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5
  1. 궁금해요 2009.08.14 17: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완용 후손 이윤형의 땅찾기 재판 중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행정법원 판사로 있을 때
    이완용 후손 이윤형이 승소판결 받은 사건이 없었는지 확인해 주실 수는 없나요?

  2. 천추 2011.11.22 00: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재판기록 찾아보면 그때 재판관들 3명은 남자입니다. 1심은 1992년이라 나경원이 판사되기전이고요.

  3. replica watches uk 2012.07.06 17: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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